2003/03/31 (15:03) from 61.248.172.11' of unknown' Article Number : 1349
박장현 Access : 17 , Lines : 92
[200302]매경신문은 ? 신문이 아닐까 (1)
<특집기획>



매경신문은 ? 신문이 아닐까 (1)



박장현 / 브레멘대 철학과 박사과정



1) "매경신문은 ? 신문" 시리즈 왜 나왔나


매일경제신문은 2002년 11월 26일부터 12월 9일까지 11회에 걸쳐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라는 기획특집을 연재하였다. 이 특집의 제작에는 강영철 경제부장과 3인의 기자가 참가하였다. 총 60여편의 취재기사 및 분석기사로 이루어진 이 기획시리즈는 벌써 그 규모에 있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일간신문이 노사관계 문제를 이 정도 규모로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룬 사례는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특집은 "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 "노동귀족은 존재한다", "노동자도 빈익빈 부익부", "정치권은 노사협상 훼방꾼" 등의 표제들이 시사하듯이 매우 파격적인 주장을 펴고 있어서 노사관계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일반국민들까지 적지 않게 긴장시켰다.


내용이 충격적이었던 만큼 그에 대한 반응도 격렬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11월 26일, 특집시리즈 1회가 발간된 당일에 벌써 항의성명을 발표하고 매일경제 불매운동을 선언하였다. 이어서 28일에는 양대 노총과 전국언론노조 조합원 50여명이 매경신문 사옥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매일경제 화형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날 경총은 규탄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 매일경제신문과 특집시리즈를 옹호하였다. 한편, "노조공화국" 특집을 둘러싼 파문은 기사가 다시 기사를 생산하는 수준으로까지 번져서, 오마이뉴스는 11월 28일에 "매일경제 노조탄압지?"라는 기사를 실었고, 이어서 12월 2일에 노동일보는 "매경 '노조공화국'시리즈 관련 대한상의 자금지원"을 폭로하였다. 같은 날 양대 노총은 "재벌앞잡이신문 매일경제 규탄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매경신문 사옥 앞에서 다시 한번 규탄시위를 벌였으며, 12월 3일에 오마이뉴스는 물음표를 떼고 "매경은 노조비판 생산기지"라는 기사를 실었다. 특집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매일경제, 오마이뉴스 등에는 수많은 인터넷 독자들이 참가하여 "노조공화국" 문제에 대한 찬반토론을 전개하였다. 이러는 와중에서도 매경신문은 시리즈를 당초 계획대로 계속 연재하였고, 12월 9일에 노사관계 개혁을 위한 "39대 액션플랜"을 제시하면서 11회 연재를 모두 마쳤다.


연재가 끝나자말자 이 일은 금새 잊혀진 듯하다. 2주일 동안의 요란과 소란이 일회성 해프닝에 불과했던 것일까? 워낙 "말 같지 않은 말"(語不成說)이라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일까?


"노조공화국" 특집연재가 끝난 불과 20여일 후인 1월 9일,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에서 한 "노동귀족"이 분신자살하였다. 두산중공업의 "그룹오너" 박용성 회장은 매경신문이 이번 특집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지닌 대표적 기업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는 인물이다 (12월 3일, "투명경영사례 / 세습경영 모르는 기업도 많다"). 그런 두산 중공업에서 노동조합 대의원 한 사람이 분신자살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특집에 따르자면 대기업 노조대의원들은 노동귀족들 중에서도 고약한 "노터치" 귀족들이라고 한다 (11월 26일, "대의원까지 전임자 행세").


스물 여덟에 입사하여 두산중공업(사영화되기 전에는 "한국중공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해온, 아내와 두 딸을 둔, 오십 먹은 노동귀족이 남긴 유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 해고자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 얼마전 징계자들이 출근정지가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였지만, 무슨 재미로 생산에 열심히 하겠는가.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아본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이 없을 것이다. [...] 더러운 세상 악랄한 두산, 내가 먼저 평온한 하늘나라에서 지켜볼 것이다. 동지들이여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해주기 바란다.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 바란다."


매경신문은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필경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무슨 소리냐, 특집을 다시 읽어봐라. 거기 6회 연재분에는 '근로자들 머슴 아니다'라는 기사도 있고, '툭하면 손배소로 노조무력화'라는 기사도 있다. 이 특집이야말로 경영자들의 '신종 노조탄압'에 대해서 정확하게 비판 및 경고하고 있지 않느냐." 듣고보니 그렇다, 할말없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 글은 매경신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찜찜하게 남아 있는 몇 가지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기 위한 것이다.


매일경제신문에 따르자면 이번 기획특집의 목적은 "2010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노사관계"를 제시하는데 있다고 한다 (11월 26일).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국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지혜를 모으자는" 것이다 (12월 3일). 이런 취지에 따라 매경신문은 강영철 경제부장 외 3인의 기자로 특별기획팀을 구성, "전국 20여 기업 노사에 대한 직접면담과, 30대 대기업 노무담당 임원과 노조위원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국내 노동전문가들에 대한 자문과, 미국 유럽 일본 등 3개 지역 10여개 기업에 대한 현지취재를 통해 선진노사관계에 대한 검증도 마쳤다"고 한다 (11월 26일). 그뿐만 아니라 이번 특집은 매경신문이 "지난 96년부터 실시해온 비전코리아 캠페인, 즉 한국을 하루 빨리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국가로 조기에 전환시키자는 대하기획의 완결판"이라고 한다 (12월 3일).


나는 매경신문과 강영철 경제부장 등의 구국일념에 시비를 걸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리고 이번 특집을 위하여 그들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서 기울인 노력을 의심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나는 그들이 이 특집시리즈를 제작하기 위하여 동원할 수 있었던 시간적, 인적, 물적 자원을 부러워하는 편이다. 충분한 자원을 지출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한국은 노조공화국이다"라고 자신 있게 진단할 수 있었을 것이고, 구국의 일념이 있었기 때문에 망국병을 치료하기 위한 "39대 행동강령"을 선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 비한다면 혼자서 책상머리에 앉아 낑낑거리고 있는 나는 우선 야코가 죽지 않을 수 없다. 심증적으로는 판단이 서는 일이 없잖아 있어도,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형편이 못된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다" 또는 "이렇게 해야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글에 "매경신문은 ?신문이 아닐까"라는 쭈뼛대는 제목을 붙이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시간적, 물적, 인적 자본이 없더라고, 그리고 아무리 자신이 없더라도, 모든 사람에게는 궁금해하고 물어볼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있지 않을까? 이 글은 바로 이 자유와 권리의 표현이며, 이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일인 특집기획이다.


2) 매경신문은 세계에서 꼴찌3등 신문이 아닐까


특집이 게재되는 동안 노동조합 측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편파보도 및 흑색선전이라고 비난하면서 특집의 연재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매경신문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매경신문 측에서는 억울하다고 반박하였다. "매일경제가 이번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결코 어느 노동단체를 특정해서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매일경제가 원하는 것은 이번 기회에 모든 이해당사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의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12월 3일, "'노조공화국' 시리즈 왜 나왔나"). 이런 취지를 알아주지 못하니 섭섭하고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측이 물리적 항의까지 전개하는 것은 신문의 사실보도권리를 부정하는 비민주적 행위하고 규정했다. "물론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나 대한민국 어느 누구라도 언론보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다. 그러나 언론사를 상대로 시리즈 '연재중단'을 요구하는 선까지 넘어가면 문제가 달라진다.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언론기능을 정지시키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선노조를 대상으로 매경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도 언론의 말할 권리를 압박하는 것으로, '민주'노총이 벌이는 '비민주적' 투쟁노선을 대변해준다"(같은 기사). 이 점에 대해서는 경제경영계도 같은 생각이라고 호응하였다. 11월 28일 경총은 성명을 발표, 매경신문의 이번 특집은 "노동조합의 비도덕적 내막의 단면과 노동운동의 불법성과 과격성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사실보도"라고 평가하면서, 노동계가 "실력을 행사해 사실보도를 중단시키려" 하는 것은 "진실보도를 사명으로 하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단히 위태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11월 29일, "경총, '노동계 반발은 잘못'").


요약하자면, 매경신문은 이번 특집에서 공정보도원칙과 사실보도원칙을 원칙대로 준수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경총은 이 특집이 용기 있는 진실보도라고 옹호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등은 이 특집이 왜곡보도 및 흑색선전으로 가득 차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놈 말이 맞을까, 저 놈 말이 맞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특집의 내용을 좀더 찬찬히 살펴보자.


"한국 국가 이미지가 '노사관계 후진국'으로 고착될 위기에 처했다. 세계적인 경영평가기관인 스위스 경제경영연구원(IMD)이 한국 노사관계를 조사대상 49개국 중 47위에 놓을 정도이다..."(11월 26일, "한국, 노조공화국인가"). 매일경제신문의 특집기획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한국의 노사관계가 세계에서 꼴찌3위? 기획시리즈 첫 회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왠지 밥이 넘어가다 목구멍에 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문기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조금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는 쪽이다. 그러나 특집시리즈를 계속해서 읽어보면 확인이 되듯이, "노사관계 꼴찌3위설(說)"은 단순한 자극용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강영철 경제부장 등은 꼴찌3위설을 특집기획의 취지, 취재대상, 그리고 기사내용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연재 마지막 날 "매경이 제시하는 39대 행동강령"의 필연성 및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꼴찌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세계경쟁력연감(IMD)에 따르면 한국 노사관계 국제경쟁력 순위는 조사대상인 49개국 중 2000년에는 44위, 2001년에는 46위, 2002년에는 47위를 기록해, 만년 최하위국임을 면치 못하고 있다"(12월 9일, "경영자, 구사대 동원 이제 그만").


이쯤 되면 목구멍에 걸린 밥을 꿀꺽 삼켜버리고 지나가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다. 궁금증을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직업병 때문에 나는 매경신문과 강영철 경제부장 등의 성경책을 읽어보기로 하였다. 다행이 내가 공부하는 학교의 도서관에는 "IMD 세계 경쟁력 연감 (IMD 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 이하 "IMD연감")"이 비치되어 있었다.


IMD연감 자신의 입을 빌자면, 연감은 세계 각국의 사회경제 환경이 "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1989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이 연감은 세계 49개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의 경쟁력 구성요소들을 분석하여 국가별로 순위를 매겨주고 있다. 연감은 경쟁력을 우선 네 가지 구성요소로 나눈 뒤 (제1장 경제현황, 제2장 정부효율성, 제3장 사업효율성, 제4장 인프라구조), 각 구성요소를 다시 다섯 가지 세부구성요소로 나누고 있다. 그 중 노사관계 경쟁력과 관련될 만한 구성요소들을 찾아보면 제2장 4조 13-15항 "노동관련법", 제3장 1조 "생산성", 그리고 제3장 2조 "노동시장" 등이 있다.


우선 "노동관련법" 조항은 세 가지 세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첫째, 고용관련법(고용 및 해고 규정, 최저임금 규정 등)이 유연한가? 둘째, 실업관련법이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도록 촉진하는가? 셋째, 이주민법이 외국인 노동력의 고용을 어렵게 만들지는 않는가? 이 세 가지 항목에 대한 한국의 등위는 49개국 중 각각 35위, 11위, 그리고 33위이다 (IMD연감 2002, 540-541쪽).


한편, "생산성" 조항은 모두 6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국의 전체생산성은 2001년 현재 49개국 중 30위로, 중하위권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로 미국, 일본, 네덜란드, 독일의 전체생산성은 각각 2위, 4위, 10위, 14위로 모두 상위권에 들어 있다. 한편, 전체생산성 발전속도의 경우 한국은 15위로서, 신흥개발국들과 함께 상위권에 속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미국, 일본, 네덜란드, 독일의 발전속도는 각각 24위, 35위, 41위, 29위에 올라 있다. 이어서 노동생산성(PPP)을 보면 한국의 그것은 전체생산성과 같은 수준인 30위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 일본, 네덜란드, 독일의 노동생산성은 각각 4위, 17위, 8위, 10이다. 노동생산성의 발전속도에 대한 자료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데, 전체생산성의 그것과 대체로 평행하고 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부문별 산업생산성(PPP)을 보면 한국은 농업생산성에 있어서 29위, 제조업 생산성은 14위, 그리고 서비스산업 생산성은 25위를 차지하고 있다 (IMD연감 2002, 557-563쪽).


끝으로, "노동시장" 조항은 모두 2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것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제조업 종사자들의 시간당 급여(임금 및 각종 수당)를 보면 한국은 7.1달러로 49개국 중 25위의 임금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하여 미국은 6위(19.9달러), 일본은 7위(19.5달러), 네덜란드는 8위(19.1달러), 그리고 독일은 1위(22.3달러)에 자리잡고 있다. 2001년도 제조업 급여인상률은 자료가 집계된 45개국 중 한국은 34위(1.3%)로 순위가 매겨져 있다. 이에 비하여 미국은 8위(6.2%), 일본은 10위(5.7%), 네덜란드는 14위(5%)로 한국보다 인상률이 월등히 높고, 독일은 한국에 이어 11위(1.2%)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년간 노동시간은 한국이 2,073시간으로 13위에 올라있음에 비하여, 미국은 1,918시간으로 25위, 일본은 1,864시간으로 30위, 네덜란드는 1,686시간으로 48위, 그리고 독일은 1,688시간으로 46위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미국의 노동자들보다 5%, 일본의 노동자들보다 11%, 그리고 네델란드 및 독일의 노동자들보다 23% 더 길게 노동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노사관계의 불화정도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국은 49개국 중 47위(47위!)를 차지, 한국의 노사관계가 인도네시아 및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에 비하여 미국, 일본, 네덜란드, 독일은 각각 15위, 10위, 9위, 그리고 25위로 평가되었다. 끝으로, 노동쟁의로 인한 인구 1.000명당 1년간 노동결손일수를 보면 한국은 40.3일로서, 자료가 집계된 46개국 중 9위를 차지할 정도로 노동결손일수가 많은 편이다. 이에 반하여 일본은 0.3일로 27위, 네덜란드는 0.6일로 35위, 그리고 독일은 0.1일로 40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미국은 노사관계의 불화정도가, 기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49개국 중 15위를 차지할 정도로 노사관계가 우호적이고 온건한 것으로 평가되었는데, 노동쟁의로 인한 노동결손일수는 72.1일로 한국보다 훨씬 많아서, 46개국 중 5위를 차지하고 있다 (IMD연감 564-577쪽).


지금까지 나는 IMD연감을 뒤져 노사관계와 관련된 (거의) 모든 자료들을 요약하였다. 그런데 특집에 인용된 "노사관계 순위" 또는 "노사관계 국제경쟁력 순위"라는 항목이 어디 있지? 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연감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다. 앞에서 뒤로 읽어보아도 없고, 뒤에서 앞으로 읽어보아도 없다. 흔들어보아도 나오지 않고, 두드려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없음을 확인함"이라고 쓰고 도장을 찍을 수 있다.


흔히 신문사란 정보의 집결지 중에서도 집결지이며, 기자란 정보입수의 프로들 중에서도 프로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고 인정하는 쪽이다. 그래서 나는 신문들이, 또는 기자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편이다. 그러나 "IMD연감... 꼴찌3위"는 아직도 찜찜하다. 매경신문과 강영철 경제부장 등은 도대체 어디서 "47위"라는 대목을 찾아내었을까? 노사관계와 관련하여 IMD연감이 한국에게 47위를 매기로 있는 대목이, 내가 확인해본 바로는, 꼭 한 군데 있다. 그것은, 위에 느낌표를 찍어가며 인용해두었듯이, "노사관계의 불화성"이라는 항목이 그것이다.
매경신문과 강영철 경제부장 등은 이 항목을 두고 "노사관계 선후진성" 또는 "노사관계 국제경쟁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불화성(hostility)"과 "국제경쟁력(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일까? IMD연감은 노사관계의 불화정도를 노사관계의 한 가지 세부구성요소 중에서도 세부구성요소로 취급하고 있을 뿐인데? 더구나 프랑스는 한국보다 한 순위 아래인 48위인데, 그렇다면 프랑스의 노사관계가 한국보다 더 후진적이고, 노사관계 경쟁력이 한국보다 더 떨어진다는 말일까?


"노사관계의 온건성"과 "노사관계의 국제경쟁력"을 동일시하는 신문사와 기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세계에서 몇 순위에 해당할까? 만약 세계의 신문사들과 신문기자들을 대상으로 정보 수집력 및 분석력을 조사하는 연구소가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면 49개가 아니라 49,000개 신문사를 대상으로 조사하더라도 꼴찌에서 3위쯤 나오지 않을까?


참고로, 노사관계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는 않지만, IMD연감이 한국에게 더도 덜도 아닌 47위를 매기고 있는 또 한 가지 항목이 있다. 제4장 5조 "가치관체계"라는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이 조항은 모두 1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항목별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순위는 다음과 같다. 삶의 질 32위, 낯선 발상에 대한 개방성 44위,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유연성과 적응성 26위, 인종 및 성별 등의 평등한 대우 45위, 여성이 국회에서 차지하는 비율 (자료가 집계된 47개국 중) 43위, 여성이 관공서 및 기업의 고위 관리자로 진급하는 비율 (39개국 중) 39위, 남성급료와 여성급료의 균등화 정도 (38개국 중) 27위, 성폭력 근절 42위, 사회의 가치관이 기업의 경쟁력을 지원하는 정도 21위, 사적 영역의 보호 42위. 이런 10개 세부항목들을 총괄 평가할 경우 한국의 가치관체계가 기업경쟁력을 지원하는 정도가 49개국 중 47위를 차지하게 된다 (IMD연감 36-37쪽, 652-656쪽).


그나마 다행스러운 순위가 아닐까? 만약 IMD연감의 조사항목들 중에서 "신문기자들이 사실과 자료를 대하는 가치관"이라는 항목이 추가로 들어있었더라면, 한국의 순위는 더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더 이상 떨어질 자리조차 없다는 난제가 있긴 하지만...


(다음 호에 "매경신문은 야바위 신문이 아닐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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