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구경

2008. 10. 26. 16:26
지난주에 본사직원들은 가을단풍맞이 산행에 빠지지말라는 일종의 협박을 받았다. 듣자마자 한다는 소리는 "회장님 나빠요~" 산에 간다는건,동네 야산이 아니고 북한산이라는 높은데를 간다는건 학창시절 빼고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도전이었다. 뭐 어린시절에 아버지 손잡고 갔다가 절벽타는등의 무서운 기억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올라갔다가 야호 한번 하고 그냥 내려오는 허무하기 짝이없는 게 등산이라고 늘 생각해와서 그럴지도 모른다.
 북한산에 가본지 거진 15~6년쯤 되었나? 남산쯤으로 생각하고 츄리링에 모자티에 그리고 혹시 추울지 몰라 E마트에서 몇년전에 샀던 산행용잠바, 거기가 운동화 차림으로 계단을 밟으면 올라갈꺼라는 허황된 생각으로 출발. 모두들 모여서 사과,오이,쵸코바를 한아름 받고서 싱글벙글 하면서 산으로~
 분명히 출발할때에는 회장님과 이사님 뒤에 언니랑 부지런히 쫓아갔었는데 10분에 한번씩 쉬고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쉬엄쉬엄가다보니 일행중 맨 뒤에서 가고 있었다.헉헉거리는 자신의 숨소리가 어찌나 듣기 싫은지 입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
 올라가다 만나는 예쁜 가을꽃도 찍고 단풍구경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갔었는데 쫓아가기만으로도 바빠서 사진은 꿈도 못 꾸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너무 많고 나를제치고 먼저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눈이 돌아갈 지경...
 이럭저럭 대성문(?)인가까지가서 옆에 무슨 봉인가에 오른다고 한다. 역시 숨이차서 일행이 가는것을 보고 뒤늦게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하니.. 회사 단체사진을 박고 내려오고있다.
난 단체사진에서도 제외되었다. -_-;;;;모두들 내려올때 꿋꿋하게 정상(?)에 도착. k언니가 날보더니 같이 가준다고 해서 올라가서 간신히 사진 한방씩 박고 산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아마도 윗 사진은 대성문에서 잠시 쉴때 어쨌튼 올라온 티를 내려고 한장 찰칵(다시 못올꺼란 생각에)
  봉우리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갑자기 몇방울씩 오던 물방울이 비로 돌변되었다.
백운봉이라고 하였던것도 같은데 넋이 반쯤 나간상태라 여기가 어딘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문수봉이라 확인되었음)
 언니랑 일행을 따라 다급히 내려가는데 아는 얼굴이 한명도 없는 것이다.
설마 우리 버림받은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앞에 가는 사람들을 따라 부지런히 거의 뛰면서 내려가는데 아뿔사! 앞에 있던 학생무리들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분위기다.
 급한김에 K언니는 같은 부서 다른 언니에게 전화를 하자 대성문 근처에 있다고 한다 때마침 보이는 위쪽의 문 하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저기 대성문인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래서 문을 향해 다시 다리가 끊어지는 등반을 시작.
 올라가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확인해봤더니 여기는 거기가 아니란다. -_-; 그래서 포기하고 정릉매표소(?)쪽으로 방향을 묻고 그쪽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앞쪽에 등산화를 신은 지팡이도 짚고있는 분들이 전문으로 하시는 분들같아서 열심히 뒤만 쫓았고, 내려가는 길이 맞는지 우리 뒤쪽에도 몇분이 따라 오셨다. (어딜가던지 꼭 이런 부류가 있다;;; 나도 물론 포함;;)
 돌계단을 내려가니,아~ 내려가는 길이 맞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순간.
몇걸음 가다보니 길이 없는거 같다.  게다가 비가 오니 진흙때문에 운동화가 미끄러지고 있고, 딴에는 머리 쓴다고 나무를 밟고 내려가야지 하는데 쭈욱 미끄러졌다. 뒤에 있는 아저씨가 비오는날 나무밟고 내려가는건 자살행위라고 거들어주신다. 아.밑에 바로 절벽인데 극락 갈뻔하였다.
 내려가는 길이 맞는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산밑으로 가야하는건데 위쪽으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숨이 다시 헉헉 대기 시작하고. 갑자기 길이 뚝 끊기고 이상한 큰 바위가 등장하더니 그 끊어진 길 위쪽으로 로프만 이어져있다. -_- 어떻게하지 어떻게하지.. 속으로 끙끙 앓고 뒤쪽에선 왜 안가냐고 성화에 , K언니는 일행을 놓치면 우리는 산에서 고립된다는 소리를 하고있고..
보다못한 어떤 아저씨가 앞으로 가셔서 나를 이끌어주셨다.만화에서처럼 그 분의 뒤쪽으로 후광이 보였다.;;;(아저씨 경황이 없어서 말 못드렸는데 감사합니다. 죽는 줄알았어요 엉엉)
 9시 뉴스에 북한산에서 고립된 여직원 자막처리로 나가는거 아니야? 헬기뜨는건 아닐까?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해보았다. -_-;
 이렇게 오르막길을 끙끙대며 가고, 몇번 진흙에 미끄러지며 절벽에 내동댕이 칠뻔하다가 아까 보았던 성벽문같은 걸 발견. 공원안내 이정표를 보니 우리가 형제봉을 등반한거야? -_-;;;
 
 형제봉을 등반하고 온 뒤에는 드디어 편안히 내려가기만 하는 길이었다. 올라갈때처럼 뾰족하고 커다란 바위를 타기 어려웠던 부분은 다시 안가도 되었고, 비는 계속 오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은 길이 5.8km남았다고 이정표에 나와있다. 드디어 마음의 안정을 찾은 나는 꽃사진을 찍은 여유가 생기는데... 이상하게 찍을만하니깐 주변에 꽃이 안보인다는거. 그리고 비오고 어두워져서 사진도 잘 안찍힌다는거(핑계라고나할까?)
이게 무슨 열매인지는 모르겠더라;;; 올라가는 길에는 꽃향유도 보고 쑥부쟁이도 보고도 못찍었는데 막상 찍을 여유가 있을때는 손떨림도 심해진다. 이 아이 이름을 모르겠는데 죽은 보라색이 아니고 우중충한 날씨에 눈에 띄게 고운 빛깔의 보라였다. 이름을 알고 싶구나. : )
 다행히 한시간쯤 걸어서 매표소를 만날 수 있었고 일행과 다시 합류해서 막걸리 한잔을 할 수 있었다. 평생에 할 등산을 오늘 하루 몰아서 한 기분이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은 특별한 추억이 하나 생겨서 좋았다. 다음에는 꽃사진 찍을 여유도 있는 편하고 급하게 쫓기지 않는 등산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무었보다 비가안오는 날이 되야겠다. 방수잠바인줄 알았던 그 잠바가 쫄딱 젖는 바람에 밤사이 감기기운데 시달린듯...
 할말도 무지하게 많은 , 분명 예쁜 추억으로 남을 하루였다. :D

 마지막 사진은 절대 합성아님. 나 올라갔다왔다니깐!!!!

ps. 회식자리에서 맞은편에 앉으신 지방에서 오신 상무님께서 나를 보고 한마디 하신다. 가다말다를 반복하고 너무 쉬어서 포기할줄 알았는데 겔겔거리면서 그래도 끝까지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갑자기 가슴이 벅찼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 오르다가 포기했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날 보며 너는 못할꺼라는 시선을 보내면 작아지는 나였는데 왠지 끝까지 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던 거 같다. 무얼까. 포기하지 않게 만든 힘은...
 몇 년전보다 나는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늦게 가더라도 언젠가 오를꺼라는 생각으로 포기하지말자. 남보다 늦었지만 언젠간 이루어낼꺼야.
 아마 산이 인간에게 주는건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뿐만이 아니라 성취감과  인내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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